2015년 12월 12일 토요일

전쟁과 성폭행

베트남 전쟁에서...

1. 미군은 베트남 농부들의 오두막으로 쳐들어가서,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어린 딸을 (성)폭행함으로써 그 아버지로 하여금 비밀을(베트콩은식처 등) 털어놓게 하는 수법을 흔히(!) 사용했다.

2. ... 다시 말해서 여자를 먼저 강간하고 나서 살해했던 것이다. 이런 병사들과 달리 그 중에는 '성병'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마을에 들어가서도 강간을 하지 못하고, 그 대신 아무 여자나 닥치는 대로 두개골, 복부, 또는 성기에 총질을 해대는 병사들도 있었다.
 일부 군인들은 임신한 여인을 강간하여 죽여놓고는, 웃고 떠들면서 배를 갈라 태아를 꺼내기도 했다. 그런 장면을 목격한 어느 여인은 재판정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여자아이 세 명이 완전히 발가벗겨진 채 온통 피범벅이 된 모습을 보았습니다. 내 친구들이 강간을 당하면서 발버둥치는 장면도 보았습니다. 미군들이 여자아이의 음부에 빈 맥주병을 쑤셔놓고, 그런 다음 질 속에 담배를 짓이겨 넣기도 했습니다.

3. 해병대 하사였던 스코트 캐밀은 군인들 사이에서 '프리티 소프'(pretty sop)라고 일컬어지는 작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리는 마을을 수색하여 사람들을 찾아내면, 몸 안에 아무것도 숨기지 못하게 하여 안전을 확보한다는 구실로 여자들의 옷을 몽땅 벗겼는데, 페니스를 수색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강간행위였지만 몸수색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4. 미 라이 학살사건에 가담했던 어느 군인은 "병사들이 재미삼아 그짓을 했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학살된 500여명의 양민들은 부녀자와 노인이 대부분이었으며, 미군은 14세 이상의 수많은 여자들을 강간하고 젖먹이와 어린이까지 모두 배를 갈라서 살해했다.

 미 라이 학살 사건에 가담했던 한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냥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번 해본 사람은 두번, 세번 계속하게 되는 겁니다."
 또 한 사람은 그 과정에서 느꼈던 감정이 마치 소년 시절에 처음으로 '수음'(자위행위)을 했을 때의 느낌과 같았다고 말했다.


제 2차 세계대전 중.

1. 1940년 폴란드의 토마쇼프에서, 한여인의 품안에서 탄환이 발견되었다는 이유로 독일 군인이 그 여인을 경찰서로 데려오자, 경찰관 한명이 이렇게 말했다. "저 여자가 과연 팬티를 입고 있는지 무척 긴장이 되는군. 어디 한번 살펴볼까. 하여간 내가 손 좀 봐야겠어."
 그러고는 곧장 그 폴란드 여인을 괴롭히다가(?) 마침내 거칠게 바닥에 쓰러뜨렸다. 여자가 다시 일어났을 때 주위에 둘러 서있던 사람들은 그녀의 처참한 모습을 바라보았다.
 속옷이 무릎까지 완전히 피로 물들어 있었다. 흥분한(?) 나머지 하혈을 하게 된 모양이였다. 그러자 여전히 그 여자 앞에 서 있던 경찰관은 "저 여자는 월경 중이야. 아무리 성교를 해도 표시가 안 나겠군"라고 말했다.

2. 1945년 2월 헝가리 국경에서 멀지않은 어느 마을에서는 13세 소녀가 16명의 소련군 병사들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 "마지막 열여섯번째 군인은 칼로 성기에서 배꼽 부분까지 소녀의 몸을 가르는 만행을 저질렀다."

3. 1944년 5월, 프랑스의 알퐁스 쥐앵 장군은 자신이 이끄는 모로코 부대 병사들에게 사기를 올려주려는 목적으로 50시간 동안 프로지논느 시와 그 주변 지역의 여자들(약 6,000명)을 강간하도록 허락했다. 각종 보고서들을 종합해보면 성폭행을 가장 적게 저지른 부대는 영국군이였다.

4.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소련군이 독일 여자들에게 저지른 만행은 극을 달렸다.
  베를린 지역에서만 11만명의 부녀자들이 소련군 병사들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그중 40%는 여러 번 폭행을 당했으며, 그 가운데 10%는 성폭행으로 목숨을 잃었으며, 그 밖에 강간에 대한 두려움으로 미리 자살한 여자들도 많았다.
 특히나 피해 여성 중에는 수많은 소녀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는 13세도 채 안된 '무지한' 아이들도 많았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조차 전혀 모르고 있었다. 심지어 그 뒤로 남자와 동침은 할수없는 상태가 되거나 성행위 혐오증세로 발전한 경우도 많았다.
 게다가 성폭행시 회음부에서 항문까지 찢겨져 피를 흘리고 있는 소녀와 성교하기 위해, 수십 명의 군인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장면도 드물지 않았다.

 어느 소련군 여단의 대위는 이렇게 말했다. "성교는 충분히 해봤지. 그 동안 내내 말이야. 나이가 든 여자부터 젊은 여자까지. 제일 좋았던 것은 꼬마 여자애를 엄마가 보는 앞에서 해치울때, "엄마! 엄마!"하고 소리를 지르는 장면이었지. 가끔 내 밑에 깔려서 숨이 끊어지는 아이도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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